심층 주해
이 법구는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한 바라문과 관련하여 설하신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주인을 피해 도망친 노예를 승가에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계율이 제정되기 전이었다. 어느 날 한 바라문의 노예가 찾아와 출가하기를 청하였다. 그는 승가에 받아들여졌고, 오래지 않아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그 바라문은 사방으로 그를 찾아다녔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그 아라한을 데리고 성 안으로 탁발하러 들어가셨다. 그때 바라문이 성문에서 그를 보고는 그 존자의 가사를 붙잡았다. 부처님께서 돌아보시며 물으셨다. ‘바라문이여, 무슨 일인가?’ 바라문이 대답하였다. ‘고타마시여, 이 사람은 제 종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그의 무거운 짐은 이미 벗겨졌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 바라문은 곧 그 사람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다시 물었다. ‘정말 그러합니까, 고타마시여?’ 부처님께서 확인해 주셨다. ‘그렇다. 그 사람의 짐은 이미 내려놓아졌다.’”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네 계급으로 뚜렷하게 나뉘어 있었다. 첫째는 바라문 계급으로, 정신적 지배권을 쥔 사제들이며 제사와 의례를 담당하였다. 둘째는 크샤트리아 계급으로, 왕족과 귀족들이며 정치적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셋째는 바이샤 계급으로, 상인과 지주들로 이루어져 나라의 경제 활동을 맡았다. 넷째는 수드라 계급으로, 가장 낮은 신분의 노예들이며 위의 세 계급을 위해 평생 고된 노동과 봉사를 해야 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기 전부터 부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도 사회에 존재했던 가장 불공정한 계급 제도였다. 부처님은 바로 이러한 불공정한 계급의 깊은 골을 무너뜨리고 평평하게 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동등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 주셨다. 귀하고 천함, 가난하고 부유함을 가리지 않으셨고, 어느 계급에 속했든 모든 사람을 교화하셨다. 그 사람이 학식이 있든 무지하든, 심지어 사회가 교화될 수 없는 자, 사회를 해치는 해충 같은 존재라고 낙인찍은 이들이라 해도, 부처님은 그들을 선하고 고귀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셨다. 위의 이야기는 바로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이다. 한 노예가 부처님께 와서 출가를 청하였고, 부처님은 그를 승가에 받아들이셨다. 당시 계급 사회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것은 부처님께서 일으키신 위대한 혁명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부처님은 당시 사회로부터 거센 반대를 받으셨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평등의 가르침을 굳게 내세우셨다. 모든 중생은 본래 똑같이 밝고 깨어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으며, 누구든 부지런히 수행하여 진리를 깨닫는다면 마침내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다. 이는 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절대적 평등을 존중하는 가르침이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어떤 장애와 반대가 어디에서 오든 자신의 입장을 굳건히 지키며 모두 이겨 내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의 승가 안에 온갖 계급과 부류의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존귀하고 부유한 귀족층에서부터, 가장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최하층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승가에 들어와 함께 생활할 때에는 계급으로 인한 모순과 분열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한결같이 수행에 힘써 도의 과실을 성취하고자 나아갔다. 물론 승가를 해치고 불화를 일으킨 소수의 무리, 예컨대 여섯 명의 문제 많은 비구들이나 데바닷타의 무리와 같은 예외는 있었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이들은 여섯 가지 화합의 원칙을 엄격히 지키며 거룩하고 고결한 삶을 살았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번뇌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렸고 평안과 해탈을 얻었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사람이라야 비로소 참된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이다.
선(禪) AI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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