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고통의 씨앗이다. 욕망을 버리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항상 자신을 관찰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일에 힘써 전념하면, 번뇌의 습기는 점차 사라진다.

심층 주해

이 두 법구는 부처님께서 밧디야 근처의 자띠야 동굴에서 밧디야의 비구들과 관련하여 설하신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때 세존께서 밧디야 성 근처의 자띠야 동굴에 머물고 계셨다. 이곳의 비구들은 자신들의 신발을 장식하는 습관이 있었다. 전승에서 말하듯이, ‘밧디야의 비구들은 여러 가지 화려한 색과 모양의 신발을 신는 습관이 있었다.’ 그들은 가볍고 귀하며 비싸고 유행에 맞으며 세련된 재료로 직접 신발을 만들거나 사람을 시켜 만들게 하였다.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배움과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다른 비구들이 이것을 보고 매우 언짢게 여겨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께서는 꾸미기를 좋아하는 그 비구들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슨 목적을 위해 이곳에 왔기에, 이제 와서 이처럼 쓸모없는 일을 좇고 있느냐?’ 그 일을 계기로 부처님께서는 이 두 법구를 설하셨다. 아름답게 꾸미기를 좋아하던 그 비구들은 말씀을 듣고 곧 아라한과를 성취하였으며, 대중 또한 이익을 얻었다.” 이 두 법구에서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일을 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신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수행자는 지혜를 써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사유하고 관찰해야 한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중요한 점은 “방일하고 산란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번뇌의 흐름이 점점 자라난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의 방일, 특히 마음에서의 방일에 대해서는 부처님께서 이미 ‘방일하지 않음’의 가르침에서 매우 자세히 권하셨다. 수행자가 방일하고 방종하게 살며 계율의 제어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타락한 삶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시체처럼 산다고 말씀하셨다. 곧 살아 있지만 이미 죽은 것과 같다는 뜻이다. 육체가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계덕과 정신이 죽었다는 뜻이다. 출가자의 도행과 인격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로부터 온갖 번뇌와 오염이 생겨나고 자라난다. 출가자의 서원은 괴로움으로 가득한 생사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 속히 도의 열매를 성취하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가 늘 마음을 방일하게 내버려 둔다면, 어떻게 그 서원을 이룰 수 있겠는가? 위에 인용된 이야기에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쓸모없는 일을 한다고 꾸짖으셨다. 참으로 헛되이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본래 출가자는 언제나 마음을 부지런한 배움과 수행에 두어야 한다. 항상 바른 알아차림과 바른 관찰 속에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깨달음과 해탈의 도리에 부합할 수 있다. 반대로 그 비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일만 하며, 온종일 신발을 예쁘게 꾸미는 데만 신경 쓰고 수행에는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야 어떻게 번뇌의 흐름을 다 끊고 깨달음과 해탈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도 부처님께 꾸지람을 들은 그 비구들과 같지는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오랫동안 얽매여 온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야 비로소 깨달음과 해탈의 도리에 따라 배우고 수행하는 출가자라는 이름에 합당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괴로움으로 가득한 생사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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