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에 빠지면 진리를 볼 수 없다. 애정을 버리고 진리를 보라.
계율을 갖추고 정견에 머물며, 진리를 깨달아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사람, 그야말로 세상의 존경을 받을 만한 이이다.

심층 주해

이 법구는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서 설하신 것으로, 오백 명의 젊은이들에 관한 이야기와 관련되어 있다. 전승에 따르면, 부처님과 성스러운 제자들이 탁발을 위해 왕사성으로 들어가시던 길에, 어깨에 과자를 메고 축제 장소로 가는 오백 명의 젊은이들을 만났다. 그때 그들은 부처님께 가볍게 인사만 하고 계속 걸어갔다. 그들은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과자를 공양하지 않았다. 그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지금은 우리에게 과자를 공양하지 않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는 이 과자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공양하라고 권할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러하였다. 부처님과 성스러운 제자들이 나무 아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그 젊은이들이 모두 찾아와 부처님과 승가에 과자를 공양하였다. 그들이 공양한 까닭은 부처님 뒤를 따라오던 마하가섭 존자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본 비구들은 못마땅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마하가섭과 같은 비구는 하늘 사람들과 인간들에게 깊이 공경과 사랑을 받는다. 그런 분에게 사람들은 네 가지 생활 필수품을 공양할 수 있음을 매우 기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 법구를 설하셨다. 이상이 이야기의 간략한 줄거리이다. 이 법구에서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은 계행과 바른 견해를 충분히 갖추고, 정법에 안주하며, 참되고 변하지 않는 이치를 분명히 알고, 모든 선한 행을 원만하게 갖춘 사람이라고 밝히셨다. 부처님의 십대 제자 가운데 마하가섭 존자는 두타행 제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고행 수행으로 유명하였다. 그의 계덕은 부처님에 못지않았으므로, 부처님께서는 여러 차례 그를 칭찬하셨다. 그러나 부처님의 찬탄을 받았음에도 그는 그것을 교만하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함께 수행하는 도반들에게 매우 낮추고 겸손한 태도를 지녔다. 출가자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학문적 능력을 높이 찬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부수적인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늘 칭찬하고 찬탄하신 것은 덕행이었다. 덕행이야말로 수행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근본이기 때문이다. 덕행을 갖추고자 한다면 수행자는 계율을 엄정하게 지켜야 한다. 계율을 엄숙하게 지켜야만 수행자에게 덕행이 생긴다. 부처님께서는 출가자는 항상 세 가지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 세 가지 덕은 ‘단덕, 지덕, 은덕’이다. 이 세 덕은 정신적·도덕적 길에서의 권위와 힘이다. 수행자가 이 세 덕 가운데 하나라도 빠뜨린다면, 스스로의 품행이 아직 원만하지 못하며,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을 감화시킬 수 없다. 단덕은 무명의 뿌리를 모두 끊어 내는 능력이다. 그 드러난 모습은 갈망, 탐닉, 욕망, 타락과 추락으로 이끄는 여러 요구들이다. 그 뿌리를 모두 끊어야만 자신과 타인에게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끊어 내려면 수행자에게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덕이다. 지혜의 태양이 밝게 비추어야만 어리석음의 어둠을 깨뜨릴 수 있다. 어리석음의 어둠이 사라지면, 바로 그 자리에서 청정하고 밝은 본성이 드러난다. 당연히 모든 괴로움과 얽매임도 끝나게 된다. 은덕은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 포용하고 변화시키며 용서하는 덕성을 말한다. 수행자는 모든 생명에게 자비롭고 이타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모든 다툼과 원한을 풀어 주고, 사람들을 생명의 맑은 근원으로 되돌려 서로 더 가까이, 더 시원하고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는 길이다. 바른 견해는 정법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바른 견해가 있으면 모든 잘못된 판단은 사라진다. 사람들이 많이 괴로워하는 것은 잘못된 지각 때문이다. 한 불행한 아내와 그 남편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이러한 잘못된 지각이 낳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남편은 어린 자식이 그림자에 대해 한 말을 듣고, 아내가 집에서 다른 남자와 부정을 저질렀다고 오해하였다. 그때부터 남편은 질투와 원망을 마음속 깊이 품고도 한마디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의 차갑고 엄격한 태도 때문에 아내는 몹시 괴롭고 불안하며 답답했지만,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은 원망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 모두 무거운 감정을 품은 채 말없이 견디기만 하였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열어 솔직한 대화를 시작하고 문제의 원인을 분명히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행한 아내는 모욕과 눈물을 속으로 삼키며 홀로 울다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녀는 풀지 못한 깊은 원한과 목메는 슬픔을 안고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났다. 뒤에 아이가 남편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그것이 자기 아버지라고 말했을 때, 그제야 남편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과, 아내를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이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말로 표현되지 못한 질투와 미움이 불러온 너무나도 가슴 아픈 결과였다. 깨닫고 후회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뒤였다. 그리하여 그는 죽는 날까지 무거운 후회와 쓰라린 자책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우리가 깊이 유의해야 할 잘못된 지각에 관한 뜨겁고 아픈 교훈이다. 오늘날에도 부부, 조부모와 부모, 부모와 자녀 등 가족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우울한 오해의 병에 걸려 있다. 각자 침묵을 지키며 마음속으로 서로를 붙들고 원망한다. 자존심이 가득하기 때문에 아무도 먼저 입을 열어 솔직한 대화를 시작하고 서로에게 마음을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결국 그 결과는 가정이 산산이 무너지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그 불행한 아내처럼 억울하고 애통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아, 참으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후회할 때에는 모든 일이 이미 너무 늦어 버린다. 차라리 서로 이해하고 마음을 열어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낫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지켜 주는 신묘한 약이다. 앞서 말한 문제로 돌아가 보자. 사람들은 주관적인 ‘분별’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인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비극을 일으키고 서로에게 고통을 주었다. 괴로움을 끝내고자 한다면 사람들은 서둘러 ‘이원적 대립’이라는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사물을 그것의 참된 모습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모든 법의 참되고 변하지 않는 이치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세상을 망상으로 과장하지 않고, 뱀에게 다리를 덧붙이는 것처럼 쓸데없는 꾸밈을 하지 않는다면, 서로 다투는 모든 생각은 곧바로 멈출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평안과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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