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억제하지 못한 자는 지혜를 얻지 못하고,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타인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훨씬 낫다. 자신을 다스리고 항상 행동을 절제하는 사람의 승리는 신, 천사, 마라, 범천이라도 패배로 바꿀 수 없다.

심층 주해

이 법구는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서 얻음과 잃음에 관해 질문한 한 바라문과 관련하여 설하신 것이다. 어느 바라문이 부처님께 얻고 잃는 문제를 물었다. 그는 속으로, 부처님은 아마 얻는 것만 아시고 잃는 것은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당신은 얻는 것도 알고 잃는 것도 안다고 말씀하시며,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셨다.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첫째는 늦도록 잠자는 것이요, 둘째는 게으름이다. 셋째는 달빛에 들뜨는 것이요, 넷째는 부귀에 오래 집착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함부로 돌아다니는 것이요, 여섯째는 남의 아내와 몰래 통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을 좇는다면, 바라문이여, 그대가 얻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것뿐이다.” 이를 들은 바라문은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그 뒤 부처님께서는 그를 교화하시기 위해 그의 일상생활을 물으셨다. 그는 자신이 도박으로 살아간다고 말씀드렸다. 도박을 업으로 삼는 사람은, 이겨서 다른 사람의 재물을 따면 기뻐하지만, 반대로 져서 가진 것을 모두 잃으면 근심하고 괴로워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이 승패에 관한 법구를 그에게 가르치신 것이다. 도박은 개인의 작은 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탐욕의 씨앗이며, 다툼과 승부욕과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원이다. 이 탐욕과 승부욕의 싹을 넓게 보면, 온 세계가 바로 그것 때문에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욕망을 이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기신 분은 오직 부처님뿐이다. 그 밖에는 그렇게 완전하게 자기 자신을 이긴 사람이 아직 없다. 그렇다면 ‘이긴다’는 것은 무엇을 이긴다는 뜻인가. 법구 103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무명과 욕망을 이기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상대를 이기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싸운다. 남을 이기고 지배하며, 다른 사람을 자기 명령과 지시에 따르게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술책, 계략과 속임수와 교활한 방법을 가리지 않고 써서 쉽게 승리하려 한다. 그래서 인류의 투쟁은 결코 그치지 않는다. 투쟁은 소유를 차지하고 명예와 지위를 높이려는 목적에서 일어난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시작되어, 더 넓게는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 사이로 번져 간다. 상대를 쓰러뜨리고 나면, 그들은 몹시 교만해져 승리를 자랑한다. 자신에게는 충분한 재능과 계략이 있으며, 자신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설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존중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맞서려는 생각을 품으면, 곧바로 제거하려 한다. 그들은 늘 파벌을 만들고, 자기 지위와 권세를 굳건히 세우려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면이 강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겉으로 드러나는 세력을 과시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남을 굴복시켜 자기 말을 듣게 하는 일이, 스스로를 굴복시키는 일보다 더 쉽다고 느낀다. 아직 자기 욕망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욕망은 그들 자신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은 그들을 종처럼 부린다. 그들은 전쟁터에서는 위풍당당하게 고함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부리는 욕망을 향해서는 단호히 맞서 외치지 못한다. 그들은 욕망을 매우 두려워하고 언제나 수동적인 처지에 놓여 있다. 겉으로는 그렇게 위엄 있고 용맹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스스로를 이기지 못한다면, 결국 자기 손으로 매우 비참한 재앙을 불러들이게 된다. 예로부터 남을 이겼다고 허세를 부리고 떠벌리는 사람은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자기 욕망을 조복시키는 사람은 참으로 많지 않다. 세상에 이러한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류는 오래도록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전쟁은 곳곳에서 계속 일어난다. 세상이 불안하면 할수록, 그것은 겁이 많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증거이다. 겁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를 제어할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두려움 때문에 먼저 손을 쓰게 된다. 밤길을 가는 사람이 휘파람을 불거나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 사람이 귀신을 무서워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반대로 참으로 담대한 사람은 그런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부처님께서는 자신을 이기려면 언제나 탐욕을 절제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것은 더 높은 삶으로 나아가는 원칙이다. 성스러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람답게 사는 길의 기본 원칙이며, 더 나아가 성인이 되는 길의 토대이다. 예로부터 성인들은 누구도 이 원칙을 따르지 않은 이가 없다. 탐욕을 절제해야 사람은 충분한 밝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때부터 마음은 가볍고 맑고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도 그때부터 더 자라날 기회를 얻는다. 그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만물과 조화롭게 살게 되기 때문이다.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그의 자아는 날마다 조금씩 가벼워지고, 어느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큰 자아, 곧 더 넓은 생명의 자리와 하나가 된다. 그때 그의 삶은 더 이상 나와 남이라는 이원적 경계 안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이 고통의 그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너무 많은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울 때에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그의 탐욕은 다시 넘쳐흘러 마음 전체를 차지해 버린다. 이처럼 모순 속에서 살아가니, 타락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사람이 욕망의 감옥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한 밝은 지혜를 갖추지 못하는 한, 그는 계속해서 무명과 죄업의 짙은 어둠 속을 걸어가게 된다. 그렇게 계속된다면, 언제쯤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이 간략한 이야기를 통해 부처님께서는 한 바라문에게 얻음과 잃음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근심하고 슬퍼한다. 이기면 환희에 차고, 지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한다. 이것은 예로부터 인류에게 나타나는 하나의 법칙이다. 이 점은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를 보아도 아주 분명하다. 여러 경기 종목에서 세계의 선수들이 서로 승부를 겨루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이기고 지는 문제를 놓고 다투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승패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심지어 거친 난투와 유혈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경기에 들어서면 누구나 승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몸을 아끼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서로 겨룬다. 자신과 자기 팀에 승리를 가져오면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과 개인, 팀과 팀 사이에서 힘과 재주를 드러내고 과시한다. 결국 이 모든 것도 이기고 지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설령 그것이 높은 기량과 예술성을 겨루는 종목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관중들도 그렇다.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자기 나라의 팀을 응원하고 편들고자 한다. 거기에서 다툼이 생기고, 원한이 되고, 때로는 서로 베고 죽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모든 것은 우열, 승패, 얻음과 잃음에 집착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기면 왕이 되고 지면 도적이 된다는 식의 생각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장면들이 생겨났는가. 도박에 빠진 사람들도 탐욕으로 인해 이기고 지려는 마음에서 그렇게 된다. 그들은 탐욕이라는 마귀에게 부림을 받는다. 도박장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은 누구나 놀 때 반드시 이기고 싶고 남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일으킨다. 특히 도박에 쉽게 달아오르는 사람은 질수록 더 크게 건다. 누구나 탐욕을 일으켜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모두 비우고 싶어 한다. 도박장에 들어가면서 이기고 지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바로 이 탐욕스러운 승부욕이, 빈손이 될 만큼 지고 나면 여러 가지 나쁜 버릇을 낳는다. 속임수, 말다툼, 폭행, 칼부림, 살인 같은 일이 일어난다.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져서 돈을 빌리고 빚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마침내 갚을 길이 없어지고, 재산을 다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한다. 이 바라문은 전문적인 도박꾼이었다. 그는 도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세상에서는 도박이 가난의 가까운 친척이라고 말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도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있는 것은 가산을 탕진하고 지갑이 텅 비는 일뿐이다. 오늘날에는 많은 나라에 공개적으로 운영되는 큰 도박장이 있다. 그곳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매우 화려하고 매혹적인 장식과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영어로 이런 도박장을 카지노라고 부른다. 이 카지노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몸과 삶을 망쳐 왔는가. 도박에 능숙한 전문가라 하더라도, 도박이라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고 승부의 흉신 같은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얼마나 많은 가정이 그것 때문에 산산이 무너졌는가. 심지어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져서 빚이 산처럼 쌓이고 도저히 갚을 수 없게 되자, 카드 한 벌을 끌어안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죽어서도 그것을 가지고 저승에 가서 계속 도박을 하려는 것일까. 도박에 깊이 중독되어 끝없이 빠져드는 사람들은 언젠가 반드시 집안을 망치고 재산을 잃게 된다. 그런 이들을 깨우치기 위해 「카지노, 죽음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카지노는 신비로운 매력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탐욕스러운 마음은 아무리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른다. 미혹되어 빠져들기 때문에 마침내 넘어지고 만다. 후회할 때가 되면, 어찌 이미 늦지 않겠는가. 누구나 도박이 속임수임을 안다. 그러나 스스로 뉘우치고 돌아서기는 쉽지 않다. 탐욕 때문에 누구나 이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끝내는 지는 것이 확실한 결말이다. 세상의 속담도 말한다. 도박은 가난의 친척이라고. 가장 가까운 형제처럼 다가와 고통의 뿌리가 된다. 마음을 괴롭히고 몸을 쇠하게 한다. 이 모두가 도박에 빠진 탓이다. 한평생 곤궁하고 근심과 슬픔 속에 산다. 만일 누군가 깨닫고 돌아선다면, 고통받는 가정을 구할 수 있다. 불법을 알아 더러운 탐욕의 마음을 끊어라. 남의 재물을 자기 것으로 탐내지 말라. 어질지 않은 사람과는 사귀지 말고, 의롭지 않은 물건은 바른 마음으로 취하지 말라. 수행자는 반드시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탐욕의 귀신이 길을 이끌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을 재앙의 지옥으로 데려간다. 도박하는 사람 가운데 과연 누가 부자가 되었는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이제부터 단호히 끊어 버리리라. 선하게 수행하는 불자가 되리라. 재계를 지키고 계율을 지키며 선한 인연을 맺으리라. 자신을 닦아 완전한 선인이 되기 위하여. 불법 덕분에 이제 새롭게 나아갈 길을 얻었네. 온 가족이 행복하고 평안하네. 세세생생 부처님의 금과 같은 가르침을 받들어 지키기를 서원하네. 부처님의 제자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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