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주해
이 아홉 법구들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큰 비구 무리와 관련하여 설하셨다. 전설에 따르면, 아반티(Avanti) 국의 쿠라라가라(Kuraraghara) 성에 깃차나(Kaccana) 장로가 성 근처 산에서 은둔하며 수행하고 있었다. 그때 소나 쿠티칸나(Sona Kutikanna)라는 젊은 불교 신자가 깊은 가르침을 배운 후 장로께 출가를 청했다. 장로는 두 번 거절했다. 출가 생활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소나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청하여 받아들여져 승가에 들어갔다. 남방에서 3년을 지낸 후, 그는 기원정사로 돌아와 부처님을 뵈었다. 부처님은 그를 친근하게 맞이하고 향실(香室)로 들어가게 했다. 그날 밤 소나는 야외에서 선정보행을 하다가 새벽이 되어 향실에 들어가 잠시 휴식했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열여섯 단계' 경을 외우게 했다. 외운 후 부처님과 용천팔부(龍天八部) 모두가 그를 찬탄했다. 그때 그의 어머니 집에 있는 한 신(神)도 그를 찬탄했다. 어머니가 놀라 묻자, 자신뿐 아니라 부처님과 모든 용천들이 그의 아들을 찬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신이 말해줌으로써 어머니는 아들이 부처님 앞에서 경을 외웠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들이 돌아오면 가르침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후 소나는 스승에게 돌아갔다. 다음 날 스승과 함께 어머니 집 앞에 탁발을 갔다. 어머니는 아들을 보고 매우 기뻐하며 향실에서 부처님을 모셨을 때 있었던 모든 일을 들려주었다. 소나는 놀라며 이유를 물었다. 어머니는 신이 알려주었다고 말하고 법문을 청했다. 소나는 승낙했다. 그때 큰 도적떼가 그 집을 털려 했으나 튼튼한 담과 사나운 개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다. 법문을 들으러 간 사이 도적들이 땅굴을 파고 들어가 보물창고를 털었다. 하녀가 달려와 알렸으나 그녀는 법문에 집중하며 보물을 신경 쓰지 않고 하녀를 꾸짖었다. 곁에 서 있던 도적 두목이 이를 듣고 "이런 분의 재산을 털면 제석천왕이 우리 머리를 부술 것"이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되돌려놓고 법문을 들었다. 법문 후 두목과 일당은 그녀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며 출가를 청했다. 소나는 어머니의 권고로 그들을 승가에 받아들였다.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고 나타나 위 법구들을 설하셨다. 법구 373에서 부처님께서는 출가자가 고요한 곳으로 들어가면 마음이 항상 평온해진다고 가르치셨다. 이 점은 앞선 여러 법구에서도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당부하셨다. 부처님 자신과 비구들도 모두 범행(梵行)과 탁발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았다. 대부분 깊은 산속에서 생활했다. 마을에서 탁발한 후 그들은 명상을 위해 한적한 곳을 찾았다. 그것은 아무런 방해나 얽매임이 없는 삶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은 항상 평화롭고 고요했다. 비록 외부 환경은 외적인 조건이지만, 수행자의 번뇌 정화에 매우 큰 도움을 준다. 그 시대 스님들의 근기 수준으로도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정화하기 위해 조용하고 고요한 곳을 찾았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어떠한가? 지금 시대에 우리는 분주하고 혼잡한 곳에 더 많이 있는 것이 아마도 그들보다 나은 점일 것이다. 그 이유는 과학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환경의 모든 요구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응은 할 수 있으나, 어리석음을 끊는 것은 아니다. 참으로 우리와 같은 하열한 근기로는 번잡하고 혼란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아직 평온하지 않은데 어떻게 외부 환경의 영향과 휩쓸림을 피할 수 있겠는가? 마음이 고요해져야 비로소 우리는 쉽게 자신을 더 깊이 관찰할 수 있다. 동시에 진리를 사유하고 검증할 수 있는 충분한 지혜의 힘을 갖게 된다. 바른 법에 대한 사유 속에서 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 이러한 평안은 오직 진리를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그 것은 외부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른 법을 관찰하면 초인적인 기쁨을 누리게 되리라."
선(禪) AI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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