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는 항상 깨어 있으며, 자신을 잘 다스리고, 진리를 따른다.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데 부끄러워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런 삿된 견해를 품고 있으면 지옥을 피하기 어렵다.

심층 주해

이 두 게송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니간타라고 불리는 자이나 계통의 나체 수행자들과 관련하여 설하신 것이다. “어느 날 비구들이 니간타 수행자들을 보고 서로 이야기하였다. ‘도반들이여, 이 니간타들은 아첼라카, 곧 완전히 벌거벗은 외도 수행자들보다 보기에는 좀 낫습니다. 저 사람들은 완전히 벌거벗었지만, 이 니간타들은 적어도 몸을 가릴 작은 천 조각이라도 걸치고 있으니 보기에도 덜 민망합니다.’ 니간타들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우리가 몸을 가리는 것은 부끄러워서가 아닙니다. 먼지와 흙도 생명이 있는 유정들이므로, 그것들이 음식에 떨어질까 두려워 천 조각 하나를 걸치는 것입니다.’ 비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 이유에 동의했고, 어떤 이들은 동의하지 않아 계속 논의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모두 부처님께 나아가 그 이야기를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데 부끄러워하고,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때에는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훗날 고통을 받게 된다.’ 이 일을 인연으로 부처님께서는 위의 두 게송을 설하셨다.”(『법구경 인연담』 제3권, Vien Chieu판, 182쪽에서 인용)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은 인간의 훌륭한 덕성이다. 사람으로서 이 덕성을 잃는다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옳지 못한 일을 하였거나, 부주의한 말로 자애로운 언어를 잃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을 때, 우리는 깊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용기를 내어 직접 사과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히 스스로 부끄러워한다. 두 사람 모두 마음속으로 다시는 이렇게 부주의한 행동이나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인간의 도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두 부류의 사람은 모두 자존심이 있고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들은 자신의 품행을 잘 지킬 줄 아는 사람들이다.

사람의 가치는 높은 지위나 많은 학식, 부유함이나 가난함, 귀함이나 천함에 있지 않다. 사람의 근본 가치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데 있다. 도덕은 인간의 아름답고 고귀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높은 지위에 있거나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아도, 말이 거칠고 행동이 조악하며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도덕적 태도가 조금도 없다면, 그런 사람은 누구에게도 진정한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한다. 혹 그런 사람 곁에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대개 겉으로 드러난 힘에 기대어 작은 이익이라도 얻으려는 이들뿐이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인격적 태도를 잃고,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자질이 부족하므로, 사람들은 그들을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으며 아첨하고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로 여긴다. 이는 인간 사회에서 가장 낮게 평가되는 부류이다. 심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참으로 경멸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법구경 316게송에서 부처님께서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에 사람들이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반대로,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일부러 감추려 한다. 잘못을 저질렀으면서도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고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 하셨다. 삿된 견해란 한쪽으로 치우쳐 집착하며 진실에 맞지 않는 견해를 말한다. 세상은 무상한데도 그것을 영원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이 삿된 견해이다. 잘못을 저질렀고 다른 사람이 그 잘못을 지적하여 고치게 해 주는데도,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자기 생각만 옳다고 우긴다면 그것도 삿된 견해이다. 부처님께서는 삿된 견해를 마음에 품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 일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삿된 견해 때문에 판단이 치우치고 한쪽으로만 집착하게 되며, 그로부터 불선한 업을 짓게 되므로 결국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진리에 맞게 바르게 판단하고 선한 업을 지으므로 행복과 평안을 얻게 된다.

법구경 317게송에서 부처님께서는 “두려워할 일이 아닌 것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무엇이 두려워할 일이 아닌데도 두려워하는 것인가. 두려움은 인간이 지닌 가장 큰 걱정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은 태어나 눈을 뜨는 순간부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자라면서는 온갖 것을 두려워한다. 가난을 두려워하고, 병을 두려워하고, 고통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에 대해 말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만일 두려워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다면 두려워할 만도 하다. 그러나 병과 죽음을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두려워할 일이 아닌데도 두려워한다고 하신 뜻이다.

두려움은 뒤바뀐 망상과 불안한 마음에서 태어난 자식이다. 세상에는 어지럽게 얽힌 걱정과 두려움이 백 가지도 넘는다. 학생은 시험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떨어질까 봐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려워한다. 그것은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두려워해야 할 일인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은 무엇인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일은 고통스러운 생사의 길로 떨어지는 것이다. 악업을 지었기 때문에 생사윤회의 흐름 속에서 끝없이 떠돌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들이 오래도록 이어 받아 온 고통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땅히 관심을 기울이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이 근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행하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을 없애야만 우리는 끝없는 윤회의 고통을 멈출 수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무명과 번뇌이다. 이것들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근본 동력이며, 우리로 하여금 많은 불선업을 짓게 하고, 그 결과로 악도와 고통의 과보를 불러오게 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많은 선행을 실천하도록 힘써야 한다. 보시하고, 공양하고, 자비로운 식생활을 실천하고, 부처님을 염하며, 참선하고, 관상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넓게 말하면, 현재와 미래에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모든 존재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행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떠나는 날을 위해 분명한 방향을 잘 준비하는 일이다. 그 길에는 오직 행복의 꽃과 열매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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