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가르침은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가르친다.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자는 참된 평화를 얻는다.
성자를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는 어디서나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성자가 태어나는 곳이라면, 그 집안은 행복하게 번영한다.

심층 주해

이 법구는 기원정사에서 설해졌으며, 아난 존자가 질문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난 존자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귀중한 코끼리, 말, 소의 혈통에 대해 가르치셨다. 코끼리는 찬단타 종이나 우포사타 종에서 태어나고, 말은 발라하카 종이라는 말왕의 계통에서 태어나며, 귀중한 표범은 데칸 종에서 태어난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인간의 고귀한 이는 어디에서 태어나는가? 생각을 마친 존자는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이 문제를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고귀한 인간은 아무데서나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 수도에서 지름 300마일, 둘레 900마일 범위 내에 태어난다. 그리고 아무 집안에서나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크샤트리아족이나 바라문족의 집안에서 태어난다." 가르치신 후, 부처님께서 이 법구를 설하셨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도 각 생명체의 업보는 다릅니다. 같은 인간이라도 왜 사람마다 다를까요? 총명한 이도 있고 우둔한 이도 있습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이도 있습니다. 평생 즐거운 이도 있고, 고통에 시달리는 이도 있습니다. 키가 크고 아름다운 이도 있고, 키가 작고 추한 이도 있습니다. 건강한 이도 있고 장애인이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부처님께서는 과거세에 지은 업인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현재 인간의 모습은 여러 생에 걸쳐 지은 선악의 업보 결과입니다. 이것이 인과의 법칙입니다. 이 몸으로 과보를 받으면서 다시 선악의 업을 지어 내세로 이어지는 다른 과보를 가져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동물과 인간의 고귀함 차이에 대해 답하신 점입니다. 동물은 아무리 고귀해도 그 업보의 범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고귀함은 다릅니다. 인간의 업보는 당연히 동물보다 훨씬 고귀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도 동물의 나쁜 성질이 남아 있습니다. 인간성이 상실되면 짐승성이 드러납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것은 인간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려운데, 더욱이 수도에 태어나는 것도 어렵고, 왕족이나 귀족 가문에 태어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생에 선을 쌓고 보시를 많이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곳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빛나는 도성에 태어나면 당연히 문명과 문화가 높은 삶을 누립니다. 복이 적은 사람은 염해나 습지, 외진 곳에 태어납니다. 그곳의 생활 수준과 지식은 도성 사람들과 견줄 바가 못 됩니다. 그러므로 수도에 태어나려면 복덕을 쌓은 이라야 가능합니다. 더욱이 높은 지위와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는 것은 더욱 복덕이 큰 것입니다. 이 법구에서 부처님께서는 성자가 세상에 나오심을 만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자는 도덕이 높고 항상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일합니다. 그 성자의 덕을 본받아 수행하면 큰 이익을 얻습니다. 고덕(高德)하고 사랑이 충만한 이가 나타나는 곳에는 이익과 안락이 따릅니다. 가정에서 부모가 수행하고 잘 가르치면 그 가정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마을에서 자신을 닦고 덕을 갖추어 자타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가 있으면 그 마을은 평안해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고덕한 사람들의 출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만약 각자가 마음을 선으로 전환하고, 자신에서 가정, 사회로 이어지는 도덕적 삶을 건설한다면, 각자는 작은 성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회가 평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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