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주해
이 두 게송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설하신 것으로, 아나타핀디카의 조카이자 한 장자의 아들인 케마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케마는 준수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여자들은 그를 보기만 하면 모두 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깊이 사모했습니다. 그런데 케마 자신은 남의 아내를 쫓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밤, 왕의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 끌고 갔습니다. 왕은 장자의 명예를 생각하여 난처하게 여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케마는 여전히 이전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에도 그는 붙잡혔지만, 왕은 그때마다 다시 그를 석방했습니다. 이 일이 장자의 귀에 들어가자, 장자는 아들을 데리고 세존을 찾아가 모든 일을 아뢰며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아이를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케마의 양심을 일깨우시고, 위의 두 게송으로 남의 아내를 쫓는 잘못을 보여 주셨습니다. 동시에 부처님께서는 케마가 과거에 세운 서원으로부터 비롯된 전생의 이야기도 이어서 들려주셨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가섭불 시대에 케마는 씨름의 챔피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받은 두 개의 우승 깃발을 부처님의 황금 탑 곁에 걸어 놓고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나의 친족과 혈연의 여인들을 제외한 모든 여인이 나를 보기만 하면 나에게 반하게 하소서.' 그 때문에 그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든 여인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게송 309에서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괴롭고 불안한 상태를 드러내십니다. 죄를 짓는 것, 편히 잠들지 못하는 것, 비난받는 것, 그리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릇된 욕망을 따라 방일하게 사는 사람의 결과입니다. 애욕은 괴로움의 뿌리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피하고 스스로 참된 행복을 세우고자 한다면, 먼저 애욕을 끊어야 합니다. 무거운 애욕을 품고 있는 사람은 결코 참된 행복 속에 살 수 없습니다. 『사십이장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애욕을 품은 사람은 횃불을 들고 바람을 거슬러 가는 사람과 같아서, 반드시 손이 타게 된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마음이 삿되고 색욕에 빠진 사람은 조만간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 곳곳에서 날마다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가정이 있는데도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색욕에 빠져 욕정을 억제하지 못해 불륜을 저지르고, 가정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비극은 매우 많이 일어났습니다. 한 남편이 자기 아내가 한 남자와 정답게 끌어안고 함께 자는 현장을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그 남자는 바로 남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남편은 지나친 질투로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분노의 불길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증오의 칼질로 그 상대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고요한 한밤중의 한순간에 한 생명이 끊어진 것입니다. 현장을 본 사람들은 색욕 때문에 파멸한 한 사람을 가엾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너무도 참혹한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금지된 쾌락을 탐하다가 마땅한 결과를 받은 사람이라며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라는 너무나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결과였습니다. 색욕에 취해 자신의 목숨마저 잊어버린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살인의 죄로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져 원한과 후회를 품은 채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옛 성현들은 이렇게 경계했습니다. 어두운 길을 즐겨 걷는 사람은 언젠가 위험을 만나고, 칼을 가지고 노는 사람은 언젠가 손을 베인다. 또한 욕정을 만족시키기 위해 환락의 장소를 찾아가 잠깐의 즐거움을 사려다가, 결국 병을 얻어 평생 한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괴롭힐 뿐 아니라 가족까지 괴롭게 만듭니다. 많은 이들이 중병에 걸려 치료할 길이 없어 일찍 죽음의 길로 가기도 합니다. 아,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스스로 그 원인을 지었으니 스스로 그 결과를 받아야 할 뿐,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대체로 성욕을 따라 방일하게 살고, 육체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법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매우 무거운 죄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그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여 편히 잠들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업신여김과 비난을 받으며, 마침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게 됩니다. 죽은 뒤에야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도 이미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지옥은 어둡고 괴로운 형벌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릇된 행위, 삿된 성행위, 음란한 행위, 폭행과 강간 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비록 육신은 남아 있어도 그 영혼은 이미 오래전에 부서져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삶을 더 이어 간다 해도 죄의 어둠 속에서 인생을 질질 끌고 갈 뿐입니다. 다만 그 사람이 마음을 돌이켜 진심으로 참회하고 과거의 잘못을 버리겠다고 서원한다면 예외입니다. 게송 310에서 부처님께서는 여러 괴로운 과보를 보여 주십니다. 복이 없음, 악한 세계에 떨어짐, 두려움에 시달림, 즐거움이 적음, 그리고 왕에게 무거운 죄로 처벌받음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삿된 음행의 결과입니다. 불법적인 음란 행위는 결코 양심과 도덕을 지닌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마음과 인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마 남에게 고통을 주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욕정의 노예가 되어 다른 사람의 순결을 해치거나 남의 가정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비록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그 행동은 짐승보다 못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인격과 가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악하고 잔인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어 강압과 성폭력을 당하고, 너무도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들의 순수한 삶은 그때부터 깊은 상처의 모습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러한 강압과 폭력은 일종의 공포이며, 평생 그들의 의식 속에 깊이 새겨져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양심을 완전히 잃고 짐승 같은 충동으로 가득한 자들은 결국 법정에 세워지고, 법에 따라 마땅하고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왕이 무거운 죄로 판결한다'는 뜻입니다. 무명과 망동이 이성을 가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처럼 비천하고 추악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요컨대 사람으로 사는 이상 누구도 잘못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임을 알았다면 우리는 곧바로 참회하고 고쳐야 합니다. 참회하고, 악을 고치며, 선을 따르는 것은 우리가 용기 있게 일어나 성스러운 집으로 들어가고 삶을 새롭게 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문입니다. 그래야만 현재와 미래의 고통스러운 감옥에서 벗어날 희망이 생깁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듯이 케마는 계속 남의 아내를 쫓아다녔습니다. 여러 차례 붙잡혀 왕에게 끌려가고 왕의 사면을 받았음에도 그는 같은 습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부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케마에게 그것이 잘못되고 그릇된 행위이며, 다른 사람의 가정 행복을 무너뜨리는 일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동시에 부처님께서는 케마의 전생 이야기와, 오늘날 이런 과보를 받게 된 옛 서원에 대해 들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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