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모든 덕을 태워버린다. 분노를 다스리면 덕을 지킬 수 있다.
몸의 분노를 다스리고, 몸의 행동을 제어하라. 몸의 악행을 멀리하고, 몸으로써 선행을 닦으라.

심층 주해

이 법구는 죽림정사에서 설해졌으며, 육군 비구(六群比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육군 비구들이 나막신을 신고, 두 손에 지팡이를 들고 뚝딱거리며 돌판 위를 요란스럽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토닥토닥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아난 존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아난이여, 무슨 소리인가?' 아난 존자가 대답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육군 비구들이 나막신을 신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런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는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 이에 부처님께서 이 법구들을 설하셨습니다." (법구경 이야기집 제3권, 원조, 43쪽 인용) 위의 네 법구를 통해 부처님께서는 몸, 입, 뜻의 삼업(三業)에서의 행동들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이 삼업을 자주 강조하시는 것은 수행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면, 어떤 선한 일이나 악한 일도 삼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고통과 행복도 우리의 삼업이 지은 바에 따라 생깁니다. 우리의 생각이 선한 일, 예를 들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품으면, 그때 우리 마음은 상쾌하고 편안해집니다. 비록 그 선한 생각이 아직 행동이나 말로 표현되지 않았더라도, 그 결과로 우리는 따뜻하고 평안한 행복을 느낍니다. 가령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 등 가까운 사람들이 어떤 불만이나 슬픔, 풀리지 않는 고통의 매듭을 안고 있을 때, 우리는 깊이 관찰하여 그 매듭을 풀어주는 방법을 찾습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관찰하고 생각하면, 마음속에 이해하고 사랑하며 공감하는 에너지가 그들을 향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자비의 따뜻한 에너지가 온몸을 감싸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이해와 사랑의 에너지 흐름에 따라 행동하거나 말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삼업에 아주 귀중하고 아름다운 선업의 에너지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렌지 나무가 스스로 잎과 꽃, 열매를 만들어 내듯이, 현재에 평안과 행복의 결과를 가져오는 창조입니다. 반대로, 삼업에서 악한 일을 창조하면 우리는 악한 과보를 거둡니다. 그 과보는 미래에만 익는 것이 아니라 현생에서 바로 익을 수 있습니다. 마치 고추 나무를 심으면 매운 고추라는 결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과 같습니다. 악한 생각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경계하지 못하고 그 정체를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동조한다면, 고통의 결과를 거두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생각을 키워 결국 몸으로는 도둑질, 강간, 살인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하고, 입으로는 온갖 악독한 말, 거짓말, 속임수, 욕설, 비방, 모함, 저주 등을 내뱉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몸과 마음에 고통을 자초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삼업에 완전히 방탕하고 거칠게 살아가며 조금도 방어하거나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의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반대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삼업에서 악업을 짓지 않도록 제어하고 극복하며 전환해야 한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계(戒), 정(定), 혜(慧)를 잘 활용하여 악한 삼업을 선한 삼업으로 전환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삼업이 청정해진다면 현생에서 고통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내생에서도 영원히 평안하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제18장 때[구애(垢穢)]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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