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주해
이 게송은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세 제자와 관련하여 설하신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위성에 한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에는 오직 아들 하나만 있었다. 그 아들은 부모에게 매우 사랑받고 귀하게 길러졌으며, 부모는 깨지기 쉬운 보물처럼 그를 애지중지하였다. 두 사람은 아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늘 지켜보았다. 그 부모는 불법을 깊이 믿고 공경하며 신심이 두터운 재가 신자였다. 어느 날, 그들은 승가를 집으로 초청하여 점심 공양을 올렸다. 공양이 끝난 뒤 스님들은 공덕을 회향하는 경을 독송하였다. 아들은 그 소리를 듣고 곧 깊은 감동과 신심을 일으켜 출가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나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만일 부모에게 공개적으로 출가를 청하면, 부모는 틀림없이 막고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생각했다.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든 몰래 집을 떠나는 것뿐이라고. 그래서 그는 마음먹은 대로 실행에 옮겨,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와 정사로 가서 부처님께 출가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받아들이시고 출가를 허락하셨으며, 승가의 일원으로 들어와 수행하고 배우게 하셨다. 아버지는 이 사실을 알고 정사로 갔다. 아들이 이미 출가하여 노란 가사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아버지는 생각했다. ‘내 아들이 이미 출가했는데, 내가 세속에 남아 무엇을 하겠는가.’ 그래서 그도 곧 부처님께 출가를 청하였다. 어머니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정사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남편과 아들이 모두 출가한 것을 보고, 그녀도 비구니들이 머무는 정사로 가서 출가를 청하였다. 이렇게 온 가족이 모두 출가하였다. 그러나 가족 사이의 정과 애착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은 자주 어떻게든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그들을 꾸짖으셨으며, 그 인연으로 이 게송을 설하셨다. (이상은 이야기의 간략한 내용이다.) 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 세 제자가 비록 몸은 출가하였지만, 가족에 대한 정과 애착은 아직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자주 서로 가까이하여 이야기를 나누려 했다. 이것은 출세간의 관점에서 말하면 출가자의 서원과 어긋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생사윤회의 뿌리는 애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말에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않으면 정토에 나지 못하고, 애착에 물들지 않았다면 사바세계에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게송에서 부처님께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에 전념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렇다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무엇인가. 출가자라면 마땅히 욕망을 끊고 애착을 버리며, 부지런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마음의 근원을 깊이 관찰하여 자기 자신의 참된 본성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출가하여 출세간의 수행을 닦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욕에 빠지고 세속의 흐름에 물들어 그것을 따라간다면, 부처님께서는 이를 ‘닦아야 할 것을 게을리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출가자에게 닦아야 할 것은 늘 마음속을 관찰하여 무명과 번뇌를 바꾸어 가는 일이다. 그래야만 윤회와 생사의 깊은 흐름 속에서 얽매이는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출가 수행을 발심했다는 점에서 세간의 입장으로 본다면, 이와 같은 집안은 참으로 드물다. 가족 세 사람이 모두 세속을 버리고 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여러 생에 걸쳐 불법과 깊은 인연의 씨앗을 심지 않았다면, 어떻게 온 가족이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려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었겠는가. 여기서 말할 만한 점은, 그 아들이 참으로 칭찬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가 여러 생에 걸쳐 불법의 씨앗을 심어 왔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스님들이 공덕을 축원하며 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단 한 번 들었을 뿐인데, 곧 발심하여 집을 떠나 몰래 나가 부처님께 출가를 청하였다. 부모가 허락하지 않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그는 굳게 결심하고 부모 몰래 집을 떠났다. 이것은 매우 용맹한 발심이다. 세간의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은 그를 불효한 아들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집을 떠나 수행하러 갔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마다 마음의 형편과 경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이것은 보통 세간의 정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출세간의 관점에서 말한다면, 그 아들의 행동은 참으로 존경할 만하다. 굳고 결연한 뜻을 지닌 사람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그가 그 집안의 외아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로 인해 뜻하지 않게 그는 부모 두 사람까지 변화시켜 모두 거룩한 길로 들어가게 하였다. 다만 출가했음에도 세속의 인연과 정애는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 사람 모두 부처님께 꾸지람을 들은 것이다. 수행자가 아직도 마음을 밖으로 향해 구하고, 욕정과 애착에 물들어 집착한다면, 어떻게 출세간의 서원과 상응할 수 있겠는가. 만일 스스로 자신의 욕망과 탐심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비록 다른 사람이 수행하여 높은 성취를 이룬 것을 보고 존경하고 흠모하는 마음을 낸다 하더라도, 자신을 돌아보면 텅 비어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그러한 흠모는 그저 헛된 흠모일 뿐,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선(禪) AI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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